내가 군에서 배운 것들

아래 글은, 말년 때 지나온 군생활을 되돌아 보며 작성했던 글이다.

별표(*)를 붙여 작은 글씨로 첨부한 문장은 모두 당시의 (2016~2018) 군대 문화에 익숙치 않은 이들의 이해를 돕기위해 현 시점에 첨부한 문장들이다. 

전역 당일. 군생활의 시작을 같이한 암호병 동기들과 1년 반만에 동서울 터미널에서 다시 만났다.

2024.01

---

말차까지* 한 달여 남았다. 남들은 카투사니 의경이니 많이들 들어가는데, 나는 다 떨어져서 육군 징집**으로 군대에 왔다. 그래도 운 좋게 좋은 특기에 좋은 자대를 받아서, 휴가는 남들보다 적지만 편한 자대 생활을 할 수 있었다.

사실 입대 전에는 군에서 이루고 싶은 여러 목표들이 있었다. 그러나 얼마 뒤 나는, 이곳에서 그런 목표들을 실현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임을 깨달았다. 또 생활하다 보니 밖에서 생각한 목표들이 아니더라도 배울 수 있는 다른 것이 많음을 느꼈다.

* '말년 연차 휴가'의 준말. 보통 말년에 휴가를 몰아쓰곤 했다.

** 저 시절 군별 선호도를 매겨 보자면 '카투사 > 의경 > 의무 소방 > 공군  >>> 육군 특기생 > 육군 징집' 정도 순이었던 것 같다. 복무 기간, 복무 중 누릴 수 있는 개인 시간 (자유도), 외출/외박의 빈도 가 대략 그 기준이다. '징집'이라 함은 쉽게 말해 전공 없이 대학에 입학하는 것인데, 차이점은 어느 전공으로 갈 지 모른다는 거다...! 즉, 최전방 부대에 소총수로 끌려가 지옥같은 군생활을 할 수도, 혹은 나처럼 운 좋게 괜찮은 특기를 받아 편한 군생활을 할 수도 있다. 총평을 내리자면 대체로 나처럼 대책 없는 놈들이 육군 징집으로 입대하곤 했다.

 

시절인연

사회에 있는 친구들이 멀어지는 기분이 들 때가 많았다. 당시에는 지금 입에 다 담아지지 않는 서운함이 있었다. 떠나는 인연이 아쉬워 더욱더 집착하곤 했다. 몇 자리 되지 않는 사지방* 자리를 잡으러 가고, 매일같이 전화하고, "부대입니다. 전화주세요."식의 문자를 보내는 식이었다.**

그런데 생각해보면 내가 사는 울타리가 달라졌으니 인연이 달라지는 것도 당연했다. 가는 사람 잡지 말고, 오는 사람 막지 말라는 말이 있다. 마음을 비우니 군에서 만난 인연들이 소중하게 다가왔다.

* '사이버 지식 정보방'의 준말 - 지금이야 일과시간 이후에는 핸드폰을 나눠주지만, 당시에는 인터넷을 하려면 사지방에 가야 했다. 사지방에 가서 페이스북을 통해 대학 동기들에게 연락하는 것이 습관이곤 했다.

** 당시에는 '수신용 핸드폰'이라는 게 생활관마다 하나씩 배치돼 있었다. 말 그대로 전화 수신만 가능한 핸드폰인데, 이용 형태를 설명해보자면 통화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지인들에게 문자를 보내고 기다리는 식이었다. 그런데 골 때리게도 문자 내용을 직접 작성할 수 없고 정해진 템플릿 몇 개중 골라서 문자를 보내야 했다. 그럼 문자를 보낸 게 누군지 어떻게 아냐고? 모른다.

 

계획 없음의 소중함

군에선 일상의 대부분을 통제받는다. 처음에는 내 시간을 뺏긴다고 느껴 참 힘들었다. 군에 입대하기 전 계획한 많은 일들을 이같은 문제로 하지 못하는 것이 짜증나고 힘들었다.

그러나 통제는 밖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. 나는 내가 만든 테두리 안에서 많은 것들을 스스로 제한하고 있었다. 계획도 그러한 것의 일부였다. 스스로를 통제하기를 멈추니 밖에서 들어오는 통제쯤은 별 것 아닌것처럼 느껴졌다.

 

평생해야 할 고민은 할 필요가 없다.

전역이 가까워지면서 한 때 나가면 어떻게 살아야할지에 대한 고민들로 막막했다.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? 1년, 한 학기, 한 달, 일상을 어떻게 꾸밀 것인가? 심각한 고민을 몇 주간 계속했다.

그러면서 오히려 안에 있는 시간을 고민만 하며 허투루 보내고 있었다. 이런 류의 고민은 평생 해야 한다. 오히려 고민해야 할 것은 평생 해야만 하는 일들이 무엇인지였다.

 

너그러움

속된말로 짬이 얼마 안 될때 선임들에게 참 많이 혼났다. 후임들이 생기자 나도 똑같이 했다. 그런 내 모습을 남들을 보고 알았다. 어느날 후임을 혼내는 동기를 보자 내 생각이 났다.

중요한 것은 화를 내는 게 아니었다. 화를 낸다고 화가 사라지지도 않고, 오히려 문제를 해결하는데 길만 돌아갈 뿐이었다. 함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서로가 서로에게 너그러워질 필요가 있다는 걸 배웠다.

 

인생은 경주가 아니다

나만 뒤쳐지고 있다는 생각을 참 많이 했다. 어쩌다 SNS라도 접속할 때, 반 강제로 알게 되는 소식들은 나를 괴롭혔다. 쟤는 벌써... 나는 아직...으로 정리되는 식의 고민이었다.

인생은 경주가 아니다. 누가 앞서 나가고 뒤쳐진다는 내 생각이 다양한 사람들을 군 안에서 마주치면서 아직 학창시절에 머물러 있음을 느꼈다.

부모님

역설적이게도 입대 후 그 어느 때보다 안에서 부모님과 많은 대화를 나눴다. 그전까지는 잘 생각해본 적 없는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에 대한 생각도 많이 한 시간이었다. 부모이기 이전에 나와 다른 한 사람이며, 또 한 쌍의 남녀임을 느꼈다.

추신: 그래도 군대는 다시 안 와도 될 것 같다.

2017.12